[세계 식량의 날] 우리가 사는 물건의 출처를 묻다

이현주 @ego

2026-10-16
[세계 식량의 날] 우리가 사는 물건의 출처를 묻다

[세계 식량의 날] 우리가 사는 물건의 출처를 묻다

식탁에서 시작하는 지속가능한 소비와 기업의 책임

매년 10월 16일은 '세계 식량의 날'입니다.

'식량'이라는 말을 들으면 흔히 논과 밭, 땀 흘리는 농부, 가을의 풍성한 수확을 먼저 떠올립니다. 하지만 식량 문제는 농민이나 농업 국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 아침 마신 커피 한 잔, 장바구니에 무심코 담은 식료품, 기업과 사업장이 구매하는 원자재까지. 우리의 일상과 조달 구조는 세계 식량 문제와 긴밀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생산량을 넘어, '접근과 조달'의 문제로

FAO(유엔식량농업기구) 등 유엔 5개 기구가 발표한 「2026 세계 식량안보 및 영양 현황(SOFI 2026)」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세계에서 기아를 겪은 사람은 약 6억 4,500만 명입니다. 세계 인구의 7.8%, 즉 100명 중 약 8명이 건강한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열량조차 꾸준히 섭취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3년 연속 줄고 있지만, 여전히 2030년 '기아 종식' 목표와는 거리가 멉니다.

풍요로워 보이는 현대 사회에서 왜 이런 일이 계속될까요?

기아는 단순히 "식량이 부족해서" 생기는 것만이 아닙니다. 시장에 먹거리가 있어도 살 돈이 없거나, 분쟁으로 유통로가 막히거나, 기후 충격으로 지역 농업 기반이 무너지면 사람들은 굶주리게 됩니다.

여기에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축이 있습니다. 기업과 기관, 소비자가 원재료를 구매하는 방식, 바로 '조달(Procurement)'입니다.

가격과 납기만 따지고 그 원료가 어디서, 어떤 환경과 노동을 거쳐 왔는지 묻지 않는다면 생산지의 산림 파괴와 토양 황폐화를 막기 어렵습니다. 생산 기반이 약해지면 그 영향은 결국 지역의 생계와 세계 식량 안보로 되돌아옵니다.

커피와 초콜릿은 숲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

커피와 코코아, 팜유, 대두를 키우는 농장과 소를 기르는 목초지를 넓히는 과정에서 열대우림이 사라져 왔습니다. 우리가 매일 쓰는 물건 하나하나가 지구 반대편 숲과 이어져 있는 셈입니다.

유럽연합(EU)의 산림전용방지법(EUDR)은 이러한 공급망의 책임을 법제화한 대표적인 제도입니다.

  • 대상 7대 원자재: 소, 코코아, 커피, 팜유(기름야자), 대두, 목재, 고무 및 관련 가공품

이 법은 EU 시장에 출시·유통되거나 EU에서 수출되는 제품이 2020년 12월 31일 이후 산림을 훼손한 땅에서 생산되지 않았고, 생산국 법률에 따라 합법적으로 생산되었음을 기업이 실사(Due Diligence)를 통해 확인하도록 요구합니다.

EUDR 적용 일정

  • 중·대규모 사업자: 2026년 12월 30일부터
  • 영세·소규모 사업자: 2027년 6월 30일부터 (단, 기존 EU 목재규정(EUTR) 대상 제품은 2026년 12월 30일부터)

이 규제가 전 세계 시장에 던지는 질문은 분명합니다.

"당신이 구매하는 원료의 출처와 생산 과정을 설명할 수 있습니까?"

작은 사업장과 협동조합에서도 시작할 수 있는 일

모든 사업장이 당장 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조달과 소비의 기준을 돌아보는 일은 동네의 작은 사업장에서도 충분히 시작할 수 있습니다.

  • 동네 카페라면: 원두 납품처에 생두의 원산지와 농장 정보, 인증 여부를 물어보기
  • 천연비누·화장품 공방이라면: 팜유나 식물성 오일의 공급 경로와 인증(RSPO 등) 증빙을 확인해 보기
  • 협동조합·마을공동체·교육기관이라면: 행사용 다과나 물품을 살 때 지역 로컬푸드, 친환경 포장재, 적정 구매 수량을 먼저 검토하기

거창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일상과 일터에서 시도할 수 있는 세 가지 출발점입니다.

  1. 출처 묻기: 어디에서, 누구의 손을 거쳐 생산된 원료인가?
  2. 근거 확인하기: '친환경'이라는 홍보 문구 뒤에 실제 데이터와 인증이 있는가?
  3. 낭비 줄이기: 필요한 만큼만 계획적으로 구매해 버려지는 먹거리와 자재를 줄이고 있는가?

질문 하나가 소비와 세상을 바꿉니다

세계 식량의 날은 먼 나라의 굶주린 이웃을 안타까워하는 날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내가 오늘 소비한 것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지 관심을 기울이는 날이어야 합니다.

생산지의 자연을 살피는 일, 필요한 만큼만 아껴 쓰는 일, 기업과 단체가 책임 있는 조달을 실천하는 일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우리의 작은 선택에서 시작됩니다.

국내 사업과 국제개발협력 사업을 함께 해 온 도농어산촌협동조합(네촌)도 이 질문을 우리 스스로에게 먼저 던지려 합니다. 우리가 고르는 물품과 우리가 만나는 생산지의 이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조합의 구매와 활동 하나하나에서 더 나은 선택을 찾아가겠습니다.

오늘 내 손에 들린 커피 한 잔, 장바구니 속 두부 한 모, 작업실 선반 위의 오일 한 병을 보며 가만히 물어봅니다.

"이것은 어디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내게 왔을까?"

이 작은 물음이 책임 있는 소비와 지속가능한 내일을 여는 첫걸음입니다.


출처: FAO·IFAD·UNICEF·WFP·WHO, 「The State of Food Security and Nutrition in the World 2026」 / EU 산림전용방지규정(Regulation (EU) 2023/1115) 및 개정 규정(Regulation (EU) 2025/26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