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바위
화천 북한강변을 따라 화천댐방면으로 가다보면 오랫동안 화천주민들과 함께 해온 미륵바위 다섯 형제을 볼 수 있다. 화강암으로 된 5개의 미륵 중 가장 큰 미륵은 높이 170cm, 둘레 130cm로서 이보다 작은 미륵 1기와 보다 작은 미륵 3기가 나란히 북한강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 모습이 마치 거인이 쪼그리고 앉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거북이가 하늘을 향해서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이 미륵바위는 단순한 바위가 아닌, 지역 주민들이 소원을 비는 주술적인 대상으로 그 의미가 크다. 오랜 기간 동안의 북한강 역사와 화천주민의 생활사를 대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대이리에서는 매년 9월9일에 미륵바위에서 제를 지낸다. 아침에는 산에 가서 산제(산치성)를 먼저 한 뒤, 미륵바위로 내려와서 제를 올린다.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을 중심으로 제수를 지내는데요. 제를 지내는 현장에서 풍년을 기원하는 시루떡을 쪄서 마련한 뒤 돼지머리, 과일 등과 함께 제단에 올려 제를 지냅니다. 제를 올리기 며칠 전에는 동네 사람들이 제단과 그 주변 청소를 하는 등 미륵바위 제에는 마을 주민들의 갸륵한 정성이 가득 담겨있다
미륵바위가 언제부터 세워지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전설에 따르면 조선 후기 이 자리에는 사찰이 있었는데 현재는 바위만 남아있다고 전해진다. 화천읍 동촌리 비수구미 마을에 사는 장모라는 선비는 과거를 보러가던 중 초립동을 만나 같이 동행하게 되는데 초립동은 동행중 선비와 한 주막에서 맛있는 음식을 마구 시켜먹고 다음날 사라지고 만다. 선비는 과거도 보지 못하고 주막에서 품삯을 갚게 되었고, 초립동은 어느 날 다시 나타나 구슬 같은 환약을 건네주며 이조판서 댁을 찾아가 보라고 한다. 이조판서 댁에는 아픈 딸이 있었는데, 그 환약을 주면 병이 나아 그 딸과 혼인할 것이라고 하여 선비가 그 집에 찾아가 약을 주니 딸은 병이 나았고 그 일을 계기로 이조판서의 도움을 받아 과거를 다시 볼 기회가 생겨 장원급제를 하였다. 선비가 화천으로 금의환향하던 중 초립동이 축하를 하며 다시 나타났는데 금세 사라진다. 초립동이 사라진 자리에는 바로 미륵바위 5구가 남겨져 있었다. 그 때부터 사람들과 선비는 정월달이면 그 곳에서 제를 올리며 가정의 안녕과 건강을 빌었습니다. 또 소금배를 운반하던 선주들도 안전한 귀향과 함께 장사가 잘 되기를 바라며 제를 올렸다.
화천 인민군사령부 막사(등록문화재 제27호)
한국전쟁시 인민군에 의해 건립된 건물로서 당시 인민군 사령부 막사로 활용되었으며, 1층 장방형 석조 슬레이트의 단순한 형태의 건축물로 당시의 인민군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화천 자유 수호탑
조국과 자유를 지킨곳…………..6.25 전쟁 당시 국군 제6사단 학도 의용군그리고 제6사단과 해병 제1연대가 합세하여
중공군 제10, 25, 27군을
화천 저수지에 수장 기킨 전투에서 전사한
무명의 학도병이
“길손이 자유민에게 전해다오.
우리는 계례의 명령에 복종하여 이곳에 누웠노라!”라는
전우에게 남긴 마지막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 추모하고자
1975년 10월 26일 화천군이 건립하였다.
화천 파로호
1938년 일제가 대륙침략을 위한 군수산업 목적에 따라 화천군 간동면 구만리에 세운 화천수력발전소 건설로 생긴 인공호수로 1943년에 준공되었다. 파로호라는 이름은 6.25전쟁 때인 1951년 5월, 중공군 10, 25, 27연대와 해병 1연대 장병들이 격전 끝에 중공군을 수장시키는 승전고를 올림으로써 화천저수지가 오랑캐를 크게 무찌른 호수라 하여, 고 이승만 대통령이 파로호로 명명, 친히 휘호를 내렸다. 북한강 협곡을 막아 축조한 화천댐으로 인해 생겨난 인공호수로 38.88㎢의 면적에 10억 톤의 물을 담을 수 있는 규모의 호수로서 상류에 평화의 댐이 있다.
화천 수력발전소(등록문화재 제109호)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동촌리와 간동면 구만리 사이의 북한강에 있는 높이 81.5m, 길이 435m, 총저수량 10억 1800만t의 콘크리트 중력댐으로 1939년 착공하여 1944년 완공하였는데, 일제의 대륙 침략을 위한 에너지원으로 건설된 것이다.
1951년 4월 8일 한밤중, 인민군과 중공군이 댐의 방수로를 통해 넘치는 물을 방류하였고, 하류에 있던 유엔군의 부교 다섯 개가 파괴되었다. 화천댐은 이전부터 수력 발전과 하류를 범람시킬 수 있는 기능 때문에 해당 지역의 난제이자 핵심 시설이었고, 유리한 위치에 서기 위해서는 댐을 점령하거나 파괴해야만 했다. 4월 9일, 그 지역에서 러기드 작전을 시행 중이던 7기병연대는 댐을 점령하려는 시도를 하였으나 견고한 방어로 인해 실패하였다. 4월 16일과 21일 사이, 동맹군이 댐을 확보하고 댐의 수문을 파괴하려고 했으나 중공군의 반격으로 실패하였다. B-29가 댐을 무력화하는데 실패한 후, 4월 30일 스카이레이더가 티이니 팀 로켓을 발사하고 2,000파운드 폭탄 한 쌍을 투하하여 여수로문 하나를 파괴하였다. 5월 1일, 19 비행군이 Mk 13 어뢰를 장착한 스카이레이더 8기가 코르세어 12기의 호위를 받으며 댐을 공습하였다. 어뢰 여덟 발 중 일곱 발이 댐에 충돌하였고 여섯 발이 폭발하였다. 이 공격으로 수문 한 개가 파괴되고 나머지 수문도 손상을 입게 되면서 댐 방류로 인한 범람 위협을 줄일 수 있게 되었다. 작전에 참여한 미국 해군 비행대 중 하나인 VFA-195는 타이거스(Tigers)에서 댐버스터스(Dambusters)로 명명되었다. 이 공습은 전 세계적으로 공중 어뢰를 지상 목표에 쓴 마지막 경우이며, 한국 전쟁에서 어뢰가 쓰인 유일한 작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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